작성일 : 04-11-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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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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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읽는세상] 좌뇌에 휴식을
[경향신문 2004-11-16 20:06]
〈김석희/ 번역가·소설가〉
작년 이맘때 사람과 컴퓨터의 체스 시합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는 이제껏 체스 시합에서 져본 적이 없는 최고의 고수이고, ‘X3D 프리츠’라는 이름의 체스 프로그램은 100년에 걸친 주요 경기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슈퍼 컴퓨터입니다. 나흘 동안의 4연전은 결국 1승2무1패의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이 ‘사건’을 화제로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번역기계의 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영어나 일본어를 우리말로, 또는 그 반대로 번역하는 소프트웨어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은 여러분도 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친구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던진 질문 속에는, 밥줄 끊어지기 전에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서양 역사를 보면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방직공장이 기계화되자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기계와 공장을 때려부순 사건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 개명한 세상에 번역가들이 힘을 합쳐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수단·방법 궁리에 지쳐-
나는 그때 잠자코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사람이 기계한테 질 수야 없지 않은가 하는 인간적 자존심 때문은 아닙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발전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든 기계일 뿐입니다. 이 한계는 컴퓨터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번역도 그렇습니다. 컴퓨터는 단순한 정보를 번역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문학을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문맥 속의 본질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본질을 느끼지 못하는 번역은 감동을 줄 수 없고, 감동을 줄 수 없는 번역은 문학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행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종종 받는 질문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번역과 창작을 함께 하다 보면 머리가 혼란스럽지 않으냐. 번역과 창작은 분명 서로 다른 형식의 글쓰기이고, 그렇다면 서로 다른 머리를 활용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한 머리로 두 머리를 굴릴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농담처럼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번역은 왼쪽 머리로 하고, 소설은 오른쪽 머리로 쓴다고.
사람의 머리는 마치 호두알처럼 생겼습니다. 호두껍데기를 벗기면 쭈글쭈글한 알맹이가 양쪽으로 나뉘어 있듯이 사람의 뇌도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좌뇌는 언어능력의 중추로서 기억과 사고 등 논리적·분석적 기능을, 우뇌는 상상력을 중심으로 하는 감각과 직관 등 창조적·종합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은 상호보완적입니다. 예컨대 우뇌가 목표를 생각해내면, 좌뇌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궁리해내는 식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두 개의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쪽(좌뇌)을 키우고 활용하는 데에만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좌뇌에 휴식을 주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엉뚱’해야 한몫하는 사회를-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참선이니 명상이니 하는 갖가지 심신수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운동이나 수행의 목적과 관심은 주로 우뇌를 개발하는 데 모아지고 있습니다.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만을 중요시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지요.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인간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길도 어쩌면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아마 ‘똑똑한’ 사람보다 ‘엉뚱한’ 사람이 한몫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물론 우뇌를 개발하는 쪽에만 치우치면 ‘멍청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요.
오늘은 수능시험을 보는 날입니다. 학생들은 이제 진로 문제를 놓고 고민할 텐데,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금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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